바우덕이와 이경화
불당골 개울가의 양지녘에 금방 새긴듯 검은 비(碑)가 눈에 띈다. 1990년에 이장한 바우덕이의 무덤이다. 바우덕이는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암덕(岩德)이기 때문에 암(岩)을 바위로 풀어 바우덕이라고 하기도 하고 박(朴)우덕을 쉽게 바우덕이로 부르게 된것이라고도 한다. 바우덕이는 청룡사(靑龍寺)를 거점으로 한 능력있는 사당(社堂)으로 남사당패의 말기로 볼 수 있는 1900년대 초에 안성개다리패 유지에 공헌하였다.
바우덕이의 기량은 유랑집단의 뭇 기예인 중에서 가장 뛰어나, 경복궁 중건시에 각처에서 모인 유랑집단의 기예인들이 재주를 보인 중에 바우덕이패가 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玉貫子)를 하사 받았다.
안성 지방의 민요에도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간다." 라고 전해질 정도로 바우덕이의 기예는 출중했다.
50여 명이나 되는 행중(단원)을 거느린 꼭두쇠(두목) 바우덕이는 남자만의 세계인 남사당패에 하나뿐인 여자였으나 그는 가히 뭇사내들을 휘어잡을 만한 치마 두른 남자였다고 전한다. 쇳소리가 나는 독특한 음성은 떠돌이패일 망정 오금을 못썼단다.
그러나 바우덕이의 출생지, 또는 어버이의 이름, 그의 정확한 생몰일(生沒日)마저 알 수가 없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다만 다섯 살인가 됐을 때, 무슨 병인지에 걸려 앓아 누운 홀아비 머슴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남사당패를 따라가라고 했다.
그 후 계집애 바우덕이는 사내들 틈에 끼여 "선소리"를 익혔고 "줄타기" "새미(舞童)"를 배워 일곱살 되던 해부터는 당당히 제구실을 할 수가 있었다. 8도를 누비며 마을로 떠돌던 안성패 남사당은 바우덕이로 해서 그 인기가 대단했다. 안성패의 윤치덕이 죽자 새 꼭두쇠를 정하는데 이론이 분분했다. 이때 남사당패 전통에 유례가 없는 여자 꼭두쇠가 탄생하게 된다. 그것은 바우덕이의 인기를 이용하여 그를 앞장 세움으로써 득을 볼 수 있다는 노련한 뜬쇠들의 뜻이었다. 여하튼 꼭두쇠가 된 바우덕이는 이름만의 꼭두쇠가 아니었다. 사내 꼭두쇠가 이끌 때보다 잠자리도 편안하게 얻어냈으며 놀자리(연회장소)를 곰뱅이 트는데(허가를 얻는다는 남사당의 은어)도 남다른 수완을 발휘했다.
이러한 바우덕이는 당연히 뭇사내들의 사모의 대상이 되었다. 더구나 남자들만의 집단인 남사당패인지라 여자로서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렇게 눈이 부신 바우덕이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한 남자가 있었다. 같은 패거리에서 서른살이나 손위이며 뜬쇠(기예에 가장 뛰어난 사람을 말하는 남사당의 은어)인 이경화가 바로 그이다. 다른 젊고 재능이 뛰어난 남자들 틈에서 드러내고 바우덕이를 사랑할 수 없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녀의 휘하에만 있다면 그것이 마냥 행복이었다.
개울가에 무덤을 쓴 까닭은
바우덕이에게 늘 젊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스무 살 되던 해, 그녀는 병을 얻었고 꼭두쇠인 그녀가 병을 얻었다는 것은 곧 행중(무리)을 떠나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한때는 그녀의 미소라도 얻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던 뭇 남성들이 그녀의 곁을 하나, 둘 떠났다. 마침내 바우덕이는 행중을 떠나 병든 몸을 끌고 청룡사 밑의 불당골을 찾아 정착했다.
그러한 그녀를 지켜준 사람이 바로 이경화였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고 병들고 외로운 그녀 곁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병수발을 하고 동냥을 하여 끼니를 잇게한 것은 그의 마음에 있는 진실한 사랑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선지피를 쏟으며 서서히 죽어가는 바우덕이, 떠가는 흰구름을 보며 어디론가 가고 있을 패거리를 그리며 지내는 나날을 이경화는 모두 지켜보았다. 스물 셋의 나이로 바우덕이가 죽자 이경화는 생전의 기구했던 팔자를 씻어버리라며 그녀의 무덤을 일부러 불당골 개울가에 묻었다.
바우덕이가 죽은 후 남사당패는 놀자리가 없어지며 하나 둘 흩어지니 청룡리는 쓸쓸해지고 그녀의 무덤도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3년 뒤, 가슴에 묻은 사랑을 찾아 다시 온 이경화는 무덤 앞 개울가에서 얼굴을 씻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바우덕이는 아니 보이고
이경화는
바우덕이 바우덕이
바우덕이 찾아
불당골 들어 왔더니
바우덕이는 아니보이고
개울물만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흐르더이다
스무 해 갓 넘긴 꼭두쇠 바우덕이
먼발치에서만 그리다
병들어 비로소
비로소 내사랑
어허둥둥 병수발 즐거워라
천하의 바우덕이
바우덕이 찌렁찌렁 쇳소리도 삭아져
그래도 내 사랑 바우덕이
마침내 내 님이시여
스물 세 해 겨울 끝내 못 넘겨
불당골 풍각쟁이 노래 그치니
생전에 기구했던 팔자 씻을지라
무덤일망정 흐르는 물 가에 쓰니
이놈의 팔자
재 넘으니 따라오고
물 건너니 따라오누나
그예 잊지 못 하고
흐르는 개울물에 얼굴을 씻고 씻고
그리움 씻어 내고 씻어 내도
이적지 떠나지 못해
나직한 한숨 되어
조용히
불당골에 남아 있더라
이경화는,
바우덕이 바우덕이
바우덕이 찾아
불당골 들어 왔더니
바우덕이는 아니보이고
개울물만 얼음장 밑으로 흐르더이다
그리움만 졸졸졸 낮게 흐르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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